겨자씨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08-09-04 19:41

조회수 2,878

겨자씨


나의 모교인 인일여고 홈페이지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컴맹에 가까운 서투른 솜씨로 더듬더듬 들어가 보았다.
아! 그 곳에 놀랍고 신비한 세계가 있을줄이야
내가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끝마다 30년 전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나의 여고 시절이 그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마다 사는 것이 힘들고 고달파서 삼십년 세월을 무심히 흘려보내는 동안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있고
이제는 늙었지만 우리들을 가르쳐 주고 자녀처럼 사랑해 주시던 은사님들도 활짝 웃고 계셨다.
나는 나의 옛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그 날 밤 글 하나를 써서 올렸다.

그 이튿날 밤에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내가 써서 올린 글 밑에
댓글들이 예쁜 리본처럼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그 중에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예수 믿고 싶어졌다.”고 써 놓은 것이다.
나는 글 하나로 예수님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해서
그 날 밤에도 또 하나의 글을 써서 올렸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일하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란 밤 12시부터
새벽기도 시간 전인 4시까지 뿐 이였으니 매일 밤을 새우며 글을 쓴 것이다.
마치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구름 속 달나라에 간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불기 없는 서재가 얼마나 추운지도 몰랐고
새벽이 그렇게 빨리 오는 것도 몰랐다.
내 스스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글을 써 놓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주님께 물었다.
“주님! 오늘 제가 쓴 글이 마음에 드세요?.”
때로는 어떤 키를 잘못 눌렀는지 밤새 써 놓은 글이 다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이내
“아! 이 글이 주님의 마음에 안들었군요.”
하고 얼른 다른 소재로 글을 다시 쓰곤 했다.

한 번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가 좋은 글감을 그렇게 마구 소비하면 나중에 글을 쓸 소재가
없으니 글감을 아끼라고 진실된 조언을 주었다.
그 선배는 내가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책 하나를 만들 수 있는 많은 분량의 글감을
종이 한 장에 달랑 써 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을 주춤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들은 내 글감 노트 앞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하나님 자랑하기!”
아들은 “엄마가 엄마의 자랑을 쓰려면 글감이 모자라겠지만
하나님 자랑은 끝이 없어서 글감이 모자라지 않을테니 걱정 말고 엄마 방법대로 쓰라“.고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기를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어 갈 즈음.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매일 밤 인일여고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을 인쇄해서 주변의 이웃들과 나누어 보는데
날이 거듭 될수록 글의 분량이 많아 인쇄하기 어려우니 책으로 발간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이므로 책을 출판할 여력이 없어 정말 죄송하다고 전했다.
그 이튿날 오산 성심병원장 조 선호님이 유정옥 사모님이 책을 낼 여력이 없으니
나중에 책으로 받기 원하는 사람은 미리 선금을 내라는 공지를 인터넷에 올렸다.
그 날부터 독자들이 내 글을 책으로 출판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기도 전에 독자들이 선금을 낸 것인데 곳곳에서 아름다운 손길들이 모아졌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내 책은
이렇게 내 글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2004년 8월 24일 출판되었다.
매일 밤 인터넷에 글 하나씩 올리는 이 작은 움직임이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낼 줄 내 자신도 상상조차 못 했다.
나는 그저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위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많이 아프고 있는 나의 이웃이 조금 덜 아플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기에 밤을 새우며 글을 썼을 뿐이다.
나는 까맣게 몰랐다.
주님이 이 작은 겨자씨를 나도 모르게 축복의 흙 속에 심어 놓으신 것을...
인생의 비를 흠뻑 맞고 떨고 있는 영혼들이 깃들일 큰 나무가 되게 할
작은 겨자씨 한 알 심어 놓으신 것을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