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06-04-09 04:32
조회수 2,282
주일 새벽 길은 아직 어두움이 짙게 깔려 어느 때가 되어도
밝아질 것 같지 않았다.
노숙자 급식 차량은 대형 석유 버너와 물통, 김치등이 가득 실려
이삿짐 차량보다 짐을 많이 싣고 달린다.
그들을 찾아가는 오늘의 새벽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때보다
더욱 가슴이 설렌다.
그 가장 큰 기쁨은 거리 선교회에서 노숙자 아침 급식을 시작한 후로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뜨끈한 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컵라면에서 떡국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슴 저 속에서 부터
기뻤던 것처럼
붉은 팥과 검은 콩을 섞어 지은 하얀 밥을 주걱으로 퍼올릴 때
코 끝에 감도는 밥냄새가 그렇게 좋을 줄은 예전엔 몰랐다.
거리 선교회의 급식 차량이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던 노숙자들이
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급식 장소에 까지 날라다 준다.
몸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질서있게
줄을 서서 급식을 기다린다.
주일 새벽인 오늘은 서울역 지하도로인 이 곳에서도 예배가 드려진다.
끝도 없이 늘어선 노숙자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한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대리석으로 둘러진 교회 건물도 없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이...
휘어져 흘려내린 꽃장식도 없이...
전자 오르간이나 그랜드 피아노도 없이...
겨우 바람 막이가 되어 있는 냄새나는 지하도로 벽에 의지하여
추운 겨울 냉기가 올라오는 언 땅에서 잠을 잔 몸으로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서 찬양을 한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유일한 악기이다.
씻지도 못한 검은 손을 들어 올리며 부르는 찬양
눈물이 흘려 내려 얼굴은 얼룩져도
거리 선교회의 김수철 목사님의 설교 말씀 마다 울려 퍼지는 아멘! 아멘!
굶주린 그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귀한 일이겠지만
그들에게 예배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얼마나 더 귀한 일인가!
어떤 이들은 그들이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고 비난한다.
그들이 소변을 아무대나 보기 때문에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한다.
물론 그런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건물의 곳곳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서울역사 화장실마저 사람들이 지키고 서서 그들의 출입을 막는다.
그렇다면 대소변이 급한 그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
과연 그들에게 화장실문만 잠겨 있는가?
교회는 그들에게 문이 열려 있는가?
여러날 씻지 못해서 더러운 모습과 냄새나는 그들이
다 떨어진 담요나 옷가지를 싸들고 주일날 교회로 예배 드리러 갈 때
그들을 반갑게 맞이 할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들은 스스로 교회에 가지 못한다.
이미 교회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수치를 느끼지 않고
교회에 갔다가 문전 박대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예배를 거리선교회가 섬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긍휼함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주일 새벽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마음을 다하여 드려지는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눈물로 드려지는 예배가 그 곳에 있다.
오늘은 예배가 끝나 갈 무렵
한 노숙자가 헌금을 했다.
그 헌금을 건네 받는데 왠지 뜨거운 눈물이 왈칵 솟아 올랐다.
부자의 몇 억보다 더 많은 것을 낸 노숙자의 헌금 천 원.
그는 자신의 것 전부를 넣었느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에는 생명이 있다.
생명이 있는 예배에는 변화가 있다.
노숙자들에게 아침 급식을 나누기 전에 드려지는 예배는
그들을 변화 시키고 있다.
불평과 분노로 가득 찼던 그들의 입술에서 이젠 감사가 나온다.
서로 싸우며 새치기 하던 그들의 줄서기가 변하여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자기 앞에 세워주는 양보의 줄서기가 된 것이다.
그들의 줄서기는 그들의 밥그릇이다.
사람은 많고 준비된 음식의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바로 내 앞에서 음식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불쌍한 노인들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다.
국회 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이유가 혹시
밥그릇 때문이라면
노숙자들이 자신보다 연약한 자를
줄에 끼워주는 사랑과 양보에 비추어보면 아주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주님은 주일 새벽 서울역 지하도로에 찾아 오셨다.
이 산으로도 말고 예루살렘으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라는 자들을 주님이 찾으시기 때문이다.
찬양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헌금이 있고
나보다 연약한 자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주는 긍휼과 사랑이 있는 예배
그 예배는 주일 새벽 거리 선교회에서 드려진다.
아무 곳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문전박대 당하는 그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는
더욱 간절하고 가슴에 저미지만
주일 새벽은 그 예배로 기쁨이 넘치는 것을 보면
거리선교회에서 노숙자들이 드리는 이 예배가
주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겠는가?
밝아질 것 같지 않았다.
노숙자 급식 차량은 대형 석유 버너와 물통, 김치등이 가득 실려
이삿짐 차량보다 짐을 많이 싣고 달린다.
그들을 찾아가는 오늘의 새벽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때보다
더욱 가슴이 설렌다.
그 가장 큰 기쁨은 거리 선교회에서 노숙자 아침 급식을 시작한 후로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뜨끈한 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컵라면에서 떡국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슴 저 속에서 부터
기뻤던 것처럼
붉은 팥과 검은 콩을 섞어 지은 하얀 밥을 주걱으로 퍼올릴 때
코 끝에 감도는 밥냄새가 그렇게 좋을 줄은 예전엔 몰랐다.
거리 선교회의 급식 차량이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던 노숙자들이
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급식 장소에 까지 날라다 준다.
몸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질서있게
줄을 서서 급식을 기다린다.
주일 새벽인 오늘은 서울역 지하도로인 이 곳에서도 예배가 드려진다.
끝도 없이 늘어선 노숙자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한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대리석으로 둘러진 교회 건물도 없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이...
휘어져 흘려내린 꽃장식도 없이...
전자 오르간이나 그랜드 피아노도 없이...
겨우 바람 막이가 되어 있는 냄새나는 지하도로 벽에 의지하여
추운 겨울 냉기가 올라오는 언 땅에서 잠을 잔 몸으로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서 찬양을 한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유일한 악기이다.
씻지도 못한 검은 손을 들어 올리며 부르는 찬양
눈물이 흘려 내려 얼굴은 얼룩져도
거리 선교회의 김수철 목사님의 설교 말씀 마다 울려 퍼지는 아멘! 아멘!
굶주린 그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귀한 일이겠지만
그들에게 예배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얼마나 더 귀한 일인가!
어떤 이들은 그들이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고 비난한다.
그들이 소변을 아무대나 보기 때문에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한다.
물론 그런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건물의 곳곳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서울역사 화장실마저 사람들이 지키고 서서 그들의 출입을 막는다.
그렇다면 대소변이 급한 그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
과연 그들에게 화장실문만 잠겨 있는가?
교회는 그들에게 문이 열려 있는가?
여러날 씻지 못해서 더러운 모습과 냄새나는 그들이
다 떨어진 담요나 옷가지를 싸들고 주일날 교회로 예배 드리러 갈 때
그들을 반갑게 맞이 할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들은 스스로 교회에 가지 못한다.
이미 교회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수치를 느끼지 않고
교회에 갔다가 문전 박대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예배를 거리선교회가 섬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긍휼함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주일 새벽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마음을 다하여 드려지는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눈물로 드려지는 예배가 그 곳에 있다.
오늘은 예배가 끝나 갈 무렵
한 노숙자가 헌금을 했다.
그 헌금을 건네 받는데 왠지 뜨거운 눈물이 왈칵 솟아 올랐다.
부자의 몇 억보다 더 많은 것을 낸 노숙자의 헌금 천 원.
그는 자신의 것 전부를 넣었느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에는 생명이 있다.
생명이 있는 예배에는 변화가 있다.
노숙자들에게 아침 급식을 나누기 전에 드려지는 예배는
그들을 변화 시키고 있다.
불평과 분노로 가득 찼던 그들의 입술에서 이젠 감사가 나온다.
서로 싸우며 새치기 하던 그들의 줄서기가 변하여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자기 앞에 세워주는 양보의 줄서기가 된 것이다.
그들의 줄서기는 그들의 밥그릇이다.
사람은 많고 준비된 음식의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바로 내 앞에서 음식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불쌍한 노인들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다.
국회 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이유가 혹시
밥그릇 때문이라면
노숙자들이 자신보다 연약한 자를
줄에 끼워주는 사랑과 양보에 비추어보면 아주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주님은 주일 새벽 서울역 지하도로에 찾아 오셨다.
이 산으로도 말고 예루살렘으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라는 자들을 주님이 찾으시기 때문이다.
찬양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헌금이 있고
나보다 연약한 자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주는 긍휼과 사랑이 있는 예배
그 예배는 주일 새벽 거리 선교회에서 드려진다.
아무 곳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문전박대 당하는 그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는
더욱 간절하고 가슴에 저미지만
주일 새벽은 그 예배로 기쁨이 넘치는 것을 보면
거리선교회에서 노숙자들이 드리는 이 예배가
주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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