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는 사람과 같이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06-04-09 04:25

조회수 2,360

총신대학에서는
종교 개혁 주간 기념행사로
해마다 설교 대회를 한다.
학생들은 장래 목회자 후보생들이므로
설교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을
다른 어떤 것 보다 큰 자부심으로 삼는다.

먼저 설교 원고 심사를 거치고
원고가 합격된 학생들이
단상에서 설교를 하여 등위가 매겨진다.
1등을 한 학생에게는
장학금과 상품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목회 사역을 하는데
가장 좋은 경력으로 빛나게 된다.

먼저 우리 큰 애가
며칠동안 끙끙거리며
원고 작성에 들어 갔다.
매일 밤을 밝히며
원고를 수없이 교정하는 고된 작업 끝에
접수를 했는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때 큰 애는 깊은 허탈감을 맛보았다.

이번엔 막내가 도전을 했다.
우리는 원고를 작성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1차 원고 심사 합격자 명단에
동생의 이름이 올랐다고 형이 전화를 했다.

"어머니! 성웅이가 원고 심사에서 합격을 했어요!"
큰 애는 자기가 합격한 것보다 기뻐하고 또 기뻐하였다.

형은 저녁마다 아우의 설교 연습을 도와 주고 있었다.
억양, 속도, 자세, 리듬, 시선, 호소력, 집중력...

드디어 설교 대회 날이 왔다.
나도 그 곳에 가겠다고 하니
아들이 내가 가면 더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냥 집에서 기도만 하기로 했다.

저녁 6시쯤 전화가 왔다.
큰 애의 전화다.
"어머니! 1등 이예요.
성웅이가 설교 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어머니!나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요."

형은 아우의 입상 소식을 전하며
너무 기뻐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럴때 나도 마음껏 좋아라 해도 되는 것인지...

"그래! 잘 했구나! 장하다.
이 모든 것이 네가 웅이를 잘 도와줘서 될 수 있었던거야."

"아니예요.
웅이가 완벽했어요.
저는 웅이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잘 할 수 있나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걸요.
웅이보다 내가 더 긴장이 되서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 했어요.

동생이 상 탄 것을 자기가 탄 것 보다
더 기뻐하는 형의 마음!
나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음이므로
큰 아들의 아우 사랑하는 마음을  
막내 아들의 1등상보다 더 기뻐하였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똑같이 기뻐 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는 울고 있는 사람과 같이 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몇 배 더 힘든 것은
웃고 있는 사람과 같이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고스란히 나의 행복이 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 고스란히 나의 성공이 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이 고스란히 나의 기쁨이 되는 것!
그것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형제 관계로는 그것이 어렵다.

" 이번에 남편이 회사에서 승진 했어요!."
성도가 기쁜 소식을 전할 때
그것은  조금도 가감없이 나의 기쁨이 된다.

" 딸 아이가 이화여대에 합격했어요!."
그 어머니의 기쁨이 똑같이 나에게 온다.

그러나 회사에서 퇴직 당한 다른 성도 앞에서
나는 다른 성도의 승진 소식을
마음껏 자랑하지 못한다.
자녀가 대학에 실패한 어머니 앞에서
다른 성도 자녀의 합격 축하를
크게 소리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라
성도와 성도,
형제와 형제
이웃과 이웃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나의 불행을 더욱 크게 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의 실패를 더욱 비참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부유가 나의 가난을 더욱 곤핍하게 하는 관계이다.

내 친구중에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성품도 온유해서 교수님과 다른 학우들에게
사랑을 독차지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그 친구가
나에게 학기말 시험 범위를 묻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아주 엉뚱한 시험 범위를 가르쳐 준 일이 있다.
그 친구가 시험까지 잘 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본연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이것이 거짓 없는 사랑의 모습임을 가르쳐 주셨다.

인생의 반을 훨씬 넘게 살아온 지금.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즐거워하는 자들과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아직도 어려운 것은 왜일까?

그런면에서 큰 아들의 동생 사랑이
형제의 사랑을 넘어
부모의 사랑에 까지 도달 한 것을 보며
나는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웃고 있는 사람과 같이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랑이
가장 하기 힘든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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