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라
 김수철  04-10 | VIEW :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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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울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울산은 당시 전국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도시였고 현대자동차와 현대 중공업 등 공업도시로서 목회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울산은 기독교인이 약 6-7% 밖에 되지 않았고 경남지역의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했으니 오히려 할 일이 많아 좋았다.    

  내가 부임한 옥동중앙교회는 조립식으로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 같아 좋았다. 더욱이 울산에서도 옥동지역은 신개발지역으로 직장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부임한 후 교회 지역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교인들이 많이 등록을 하여 교회가 비좁았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성전 지을 마음을 주셨다. 주변의 아파트들이 들어서는데 교회는 조립식이어서 초라할 뿐 아니라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교육관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전이 황무 하였거늘 너희가 편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직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다."라는 학개서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교인들 몇 가정이 교회당 건축을 차후로 미루자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교회건축을 미룰 수 없어서 몇 가정의 반대에도 교회 건축은 시작되었다. 교회당을 건축한 후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다.  그러나 교회 내에 목회자와 화목하지 못한 가정들이 있어서 늘 목회에 어려움이 따랐다.  한번은 설교를 하는데 나를 반대하는 성도들이 내 눈에 자꾸 거슬리게 하였다. 마음에 부담이 되어 설교를 할 수 없었다. 그 때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 너는 왜 그쪽을 보니 너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너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 그쪽을 봐라 그리고 나를 봐라."  하시면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다.  그곳에서 10년을 목회 하면서 하나님께서 많은 훈련을 시키셨다.  그런 가운데 교회 창립1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고 교회를 봉헌하게 된 것이다.  

교회를 봉헌하면서 그동안 교회에 충성을 다한 일곱 명의 안수집사와 다섯 명의 권사를 세웠다. 그 중에는 교회를 건축할 때 무리를 일으켰던 두 가정 부부에게 안수집사와 권사의 직분을 주게 된 것이 가장 감사했다. 목사와 갈등을 일으킨 가정은 대부분 교회를 떠나는데 화해하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교회를 크게 짓고 봉헌한 것도 나의 자랑이요 기쁨이지만 나와 불목했던 성도들과 끝까지 인내하여 화목하게 된 것은 나의 삶에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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